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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los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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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3 Oct 2009 02:01:00 +0000</pubDate>
		<dc:creator>admin</dc:creator>
				<category><![CDATA[Cinem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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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closer&#62;
영화 &#60;클로저&#62;는 사랑에서의 양자간의 순간적인 홀림과 극적으로 마주잡은 두 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른 흔한 멜로영화가 사랑에 관한 긍정적인 수식어들과 표면적인 멜로영화의 장르적 공식에 수긍하고 있다면, 영화 &#60;클로저&#62;는 그와 반대로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시작할 뿐이라며 사랑이 수많은 미혹과 또 다른 끌림에 어떻게 저항하는지, 또는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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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mg src="http://cfile2.uf.tistory.com/original/182CFA134AD35E5D910E70" alt="01" height="333" align="top" /></p>
<p>&lt;closer&gt;</p>
<p>영화 &lt;클로저&gt;는 사랑에서의 양자간의 순간적인 홀림과 극적으로 마주잡은 두 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른 흔한 멜로영화가 사랑에 관한 긍정적인 수식어들과 표면적인 멜로영화의 장르적 공식에 수긍하고 있다면, 영화 &lt;클로저&gt;는 그와 반대로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시작할 뿐이라며 사랑이 수많은 미혹과 또 다른 끌림에 어떻게 저항하는지, 또는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라이벌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들은 쉽게 남녀사이에 오갈 수 있으며 이는 사랑의 중요한 양상들 중에 하나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에게 더 가까이(closer) 다가가려는 순간, 그 시도는 타자의 고유한 공간을 침범하며 둘 사이의 사랑. 혹은 주체와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은 닫혀(closed)버린다. 영화 속 네명의 주인공들, 앨리스(제인), 댄, 안나 그리고 래리는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4년의 시간동안 숱한 눈물과 웃음을 함께하고 많은 밤을 보냈는데도 말이다. 관계의 시작부터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서로에게 철저한 타인(stranger)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p>
<p><img src="http://cfile28.uf.tistory.com/image/192CFA134AD35E5D92399C" alt="02" height="326" /></p>
<p>영화는 대사 속에 수 많은 현대적 개그 코드를 차용하며 그와 동시에 기본적인 캐릭터의 성격 묘사는 물론이요, 그와 동시에 관계에 있어서의 중요한 영화의 keyward를 끊임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중요한 소도구로 존재하는 &lt;수족관&gt;의 역할 또한 생각해 볼만하다. 영화에서 &lt;수족관&gt;은 인물의 진실 추구 방식과 관계를 대변하는 하나의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안나는 유리로 가로막혀진 세상에서 노닐고 있는 물고기들을 감상하며, 그 자체에 매료되었다. 유리를 통해 적절하게 가로막혀진, 그 이상 접근(close)할 수 없는 그런 허구적 실체의 추구에.<br />
또한 댄의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lt;수족관&gt;은 앨리스와 안나 사이를 부유하는 댄의 모습을 적절히 설명해 준다. 두 여자 사이를 부유하고 있지만 유리로 가로 막혀진 채, 수족관이라는 이름하에 실패하는 댄의 사랑…<br />
영화의 키워드중 하나인 ‘stranger’를 테마로 내건 안나의 전시회에서, 앨리스는 예술이란 거짓 투성이라고 말한다. 사진 속 인물들은 슬프고 외로운데 사진은 세상을 아름답게 왜곡시키고 그 때문에 전시회는 말짱 사기극인데도 우습게도 사람들은 ‘거짓에 열광한다’고. 예술에 관한 앨리스의 관점을 묘사하는 듯한 이 대사는 사실 영화 속에서의 ‘진실’에 관해 말하고 있다. 관계에 있어 진실과 그 이면의 진실과 거짓. 바로 ‘실체적 진실’과 ‘허구적 진실’로 대변되는 개념 말이다. 또한 전시회처럼 우리의 관계, 삶 또한 말짱 사기극 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면의 거짓인 허구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br />
앞 서 거론한 두가지 진실과 함께 영화 속 인물 구도 또한 사랑에 있어서 진실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나눌 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사랑, 진실에 대한 접근방식, 생각에 있어서 댄과 래리/ 안나와 앨리스는 우습게도 일치한다. 감독은 사랑에 있어 남녀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속 여성들은 ‘허구적 진실’을 추구하는 듯 보이고, 남성은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듯 보이는데, 여기서 ‘허구적 진실’이란 그 단어 자체에 모순이 존재한다. 허구적인 진실이라니? 그렇지만, 꼭 실제로 일어났고 물리적인 것 만이 진실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생각해본다면, 솔직함과 진실함은 다르다는 것을 말 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과 진실되게 말하는 것의 차이는 어쩌면 마음의 ‘의도’가 포함된 것 일지도 모른다.<br />
나는 그중 댄과 래리로 대변되는 남성의 접근 방식에 더 중점을 두어 생각해 보았다. <br />
영화 속에서 댄과 래리의 대사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단어 중 하나는 바로 true. 그것은 바로 “실체적 진실”이다. 현실 속에서 그대로 일어났던 일, 물리적이고 사실적이며,<br />
순간적인 사소한 감정까지도 놓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 말이다. 댄은 신문의 부고란 기자이며 소설가이다. 소설가란, ‘사실’적인 면보다는 다분히 ‘허구’적인 면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댄은 모든 면에 있어서 사실의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허구를 통해 이야기를 창조해야하는 소설에 있어서도 앨리스의 사실적인 존재에 의존을 통해, 사실 창조라기보다는 앨리스의 삶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과 다르지 않는 글을 만들 뿐이다. 심지어 래리와의 음란채팅을 하는 장면에 있어서도 그가 댄이 변신한 여자는 ‘안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여성으로 변신해 즐기려 할때에도 그는 사실에 의존하는 ‘허구’라는 것을 창조할 수 없는 너무나도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방식의 인물인 것이다. 댄은 결국 사랑에 있어서 끊임없이 ‘실체적 진실’을 요구하는 탓에, 다시 만나게 된 앨리스와도, 이혼 직전이었던 안나와도 이별하게 된다. 이혼 서류에 도장까지 받아온 안나에게 래리와 잤느냐 하는 문제를 집요하게 걸고 넘어지는 댄의 태도를 통해 결국 안나는 래리에게 돌아가게 된다. 댄의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사랑에 있어서 ‘욕망’과 ‘소중함’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혼동이라기보다 댄은 자기 자신의 욕망 그 자체만을 응시할 뿐이다.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 그리고 타자를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욕망만을 바라 볼 뿐이다. 그리고 또한 ‘솔직함’과 ‘진실됨’이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 아님을 댄은 간과하고 있다.<br />
래리 또한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지만, 댄과 다른 점은 시간이 지날 수록 ‘실체적 진실’의 추구보다는 ‘허구적 진실’을 추구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래리는 출장에서 돌아와 창녀와 잤다고 아내에게 말할 만큼, 그리고 안나에게 댄과 잤는지, 느낌은 어땠는지,집요하게 몰아세울 만큼 처음엔 ‘실체적 진실’을 추구했지만, 후에는 ‘허구적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로 변모한다. 래리가 앨리스의 클럽에 찾아가 진실을 말해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앨리스는 “거짓말은 여자들이 옷을 벗지 않고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재미에요. 하지만 하는게 더 좋죠(but it’s better if you do.)”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래리는 순간 별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판단을 하지 않고 스트립쇼나 하라고 하는데, 앨리스가 스트립쇼를 시작하자 래리의 눈동자와 표정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변한다. ‘허구적 진실’에 대한 끈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각성한 래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능글맞게 웃으며 ‘나와 이혼을 하고 싶거든 내게 창녀가 되라’고 요구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래리는 여성이 추구하는 진실의 실체의 본질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실체적 진실’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음에 대해 인식하고, 그를 포용한데서 결국 래리는 안나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br />
이 영화 속에서 끝내 사랑하는 이에게 본명을 알려주지 않는 앨리스와, 낯선낯 친밀감을 부르짖으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 ‘허구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여성. 그리고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남성. 네명의 인물들은 영화속에서 철저히 사적인 존재들로 남아있다.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사회적인 맥락은 배제된채 네명의 사적인 인간관계 그 속만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토록 친밀함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에서, 이러한 관계에서, 우리는 왜 소통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우리의 존재 근저에 깔려있는 ‘소통불가능성’이 ‘친밀함’으로도 극복 할 수 없는 문제 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p>
<p><img src="http://cfile1.uf.tistory.com/original/202CFA134AD35E5D9376DF" alt="03" height="333" /></p>
<p>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stranger 일 수 밖에 없다. 낯선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 외피만을 툭 건드리고는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진실’이 미치도록 궁금하지만 막상 알아버리면 십중팔구 서둘러 관계를 빠져나온다. 타인과 내가 ‘가까운’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단단하고 그럴듯한 외피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페르소나에 틈이 생기면 그 결과는 사랑에 있어서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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